중국의 대표적인 권력자를 꼽는 다면 당연히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딱 두 사람을 꼽을 수 있습니다.

중국과 중국 공산당은 바로 이 두 인물에 의해서 좋은 방향이든 그렇지 않은 방향이든 상당한 변화를 겪어 왔으며 이들의 행보 중 상당수는 오늘날의 중국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기도 합니다. 우선 마오쩌둥은 쟝졔스와의 체제 경재에서 승리를 거머쥔 인물이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1등 공신으로서 현재 중국 내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지닌 인물입니다. 1949년 공산주의 중국 건국을 주도한 마오쩌둥은 1950년대, 60년대, 70년대까지 스스로의 1인 지배 체제를 통해 중국을 이끌어 왔으며 이 시기 동안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등 중국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다수의 정책을 펼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마오쩌둥은 공산주의 중국의 창시자로서 오늘날까지도 중국 내부에서는 마오의 과오를 비판하는 행위 자체가 금기시 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한편 덩샤오핑은 1978년 정권 장악 이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등 마오쩌둥 시기 벌어진 정책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함으로써 국가 정책의 대전환을 알렸습니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있던 기존 중국의 정책 기조를 실용주의 노선으로 급 변경하며 변화를 주도했고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끌어왔습니다.
오늘날 중국의 고속경제 성장은 바로 이 개혁개방 정책으로부터 시작된 바 중국 내에서 덩샤오핑은 공산주의 중국의 창시자인 마오쩌둥과 함께 가장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덩샤오핑은 정치적 자유화를 요구하는 인민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함으로써 중국 정치에 어두운 역사를 새긴 과오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두 인물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중국 공산당에게 있어 각각 창시자와 설계자로 여겨지며 오늘날까지도 절대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바라볼 때는 두 인물에 대해서 비판조차 금지되는 풍토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그들 공산당에게 있어 이러한 우상화 작업은 공산당 권력 유지를 위한 상당히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에서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이어 중국 내 3대 지도자 반열에 오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인물이 또 한 명 있습니다. 바로 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 서기이자 중화인민공화국 국가 주석이자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자,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지위를 모두 독차지 하고 있는 시진핑 입니다. 사실 대외적으로 마오쩌둥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의외로 많은 분들께서 중국이 1인 지배 체제로 돌아간다고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마오쩌둥 이후 권력 집중과 1인 지배 체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집단 지도 체제를 제도화시켜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덩샤오핑을 비롯한 원로 정치인들이 모두 사망한 뒤로 중국 정치는 총서기의 권력 집중을 견제하기 위해서, 총서기가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제도적으로 나머지 위원들이 어느정도 힘의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총서기 한 사람이 결코 독단적으로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원래 제도라는 건 한번 만들어 놓고 나면 억지로 무너뜨리려 하지 않는 이상 쉽게 사라지지 않는 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 굳혀져 온 제도를 깨뜨리려고 하는 사람이 등장하게 된 겁니다.
2012년 11월 제18차 당대회 당시 시진핑은 총서기 직과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동시에 승계 받으며 실질적으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짐을 의미합니다. 기존에 장쩌민이나 후진타오 같은 주석들은 모두 총서기직을 승계받은 이후에도 독단적으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도록 몇 년동안 전임자로부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물려받지 못하고 견제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임자들과는 다르게 2012년 출범한 시진핑 정권은 이미 총서기와 군사위 주석직까지 모두 물려받음으로써 시작부터 완전한 권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전임자들보다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시작한 시진핑은 총서기 권한을 이용하여 중앙 및 각 지방의 요직에 학연/지연이 닿는 인물들을 채워넣으며 빠르게 공산당 내 권력을 키워나갔습니다. 또한 시진핑은 당 내 강력한 권력 행사를 위해서 외교 경제 문화 인터넷 정치 분야 등 각종 부처의 대표 직위를 죄다 본인 것으로 돌리며 현재까지 도합 10가지가 넘는 직위를 차지해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중에서도 경제 부처는 원래 중국 권력의 2인자인 총리가 가져가야 하는 분야인데 이 경제 부처마저 장악했다는 것은 1인자와 2인자의 권력 격차를 더욱 벌리겠다는 시진핑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진핑은 총서기직과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모두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하위 부서의 대표자리까지 모두 독차지하며 권력 집중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이들 아시는 것 처럼 시진핑은 집권 이후 공산당 내 만연한 부패를척결하겠다는 명목으로 반부패운동을 활발히 벌인 바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민중들은 공산당 내 부패 척결을 이루겠다는 시진핑의 선언에 대대적으로 열광했으며 이러한 민중의 지지 덕분에 명분까지 획득한 반부패운동은 시진핑이 자신의 정적을 축출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최근 언론을 통해서 나오는 중국관련 내용들 중 가장 핫했던 키워드가 몇몇 있었을 겁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규제와 탄압입니다. 알리바바와 마윈이 공산당에 의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단 이유로 오랜 기간 종적을 감췄던 사건, 이후 이어진 대대적인 빅테크 기업 규제, 청소년들에 대한 사교육 규제 및 게임 셧다운제, 아이돌 꽃미남 탄압 및 남성성 규정을 비롯한 연예계 인물에 대한 각종 검열, 최근 헝다 사태와 같은 부동산 기업 규제 등 최근 들어 유난히 공산당의 경제 문화적인 통제가 늘어났다는 것을 많이 느끼셨을 겁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탄압 또한 결국 공산당 통치에 큰 위협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거대 기업 및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고 대중들에게는 자본주의적 문화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며 끝에는 시진핑과 당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중국이 미국과 호주등 서방세계와 지속적으로 대립하여 무역전쟁과 같은 출혈 행위를 피하지 않는 행위의 내막에는 자신들의 핵심 이익을 보호하녀는 것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중국 인민들을 애국주의로 결속시키려는 속내가 담겨져 있습니다. '세계 1위 국가와 경쟁하는 중국''미국의 하수인 호주와의 싸움을 피하지 않는 중국'등 대외적인 적을 상징하는 행위에는 인민들의 시진핑 정권에 대한 의구심을 외부로 표출시키며 더욱 원만한 통치를 이어가고자 하는 목적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시진핑은 현재 주석으로서 2연임 째로 2021년 집권 9년차에 접어든 상황입니다. 어차피 내년이면 만료되는 임기 앞에서 그는 왜 이렇게 권력 강화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요? 이번 2021년 11월에 열린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어느 정도 나타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번 회의에서 중국 공산당은 건국 이후 역사상 딱 세번째로 역사 결의를 채택했습니다.
1945년 첫 번째 역사결의에서는 마오쩌둥이 중국식 사회주의 노선을 천명했으며 1981년 두 번째 역사결의에서는 덩샤오핑이 문화대혁명의 반성과 함께 개혁개방 정책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2021년 11월 채택된 역사결의는 지난 100년간의 공산당 경험을 결산함과 동시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치켜세우는 내용으로서 시진핑을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이은 중국 공산당의 3대 지도자 반열에 올리려는 의도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일각에서는 시진핑이 덩샤오핑을 넘어서 마오쩌둥과 함께 2대 지도자로 올라서고자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게다가 원래 역대 지도자들은 임기 중 자신의 후계자를 지목하여 권력 승계 절차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현재 시진핑은 자신의 차기 6세대 후계자를 전혀 내놓고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후계자 선정 자체가 현 정권의 권력 약화를 초래하므로 시진핑이 임기 말 레임덕(lame duck)을 방지하기 위해서 후계자 지목을 늦추는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기도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기존 3연임 제한 조항 삭제와 역사 결의 채택 등 종신제의 기틀을 하나한 닦아온 시진핑이 결국 스스로 또다시 3번째 연임을 이어나가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도로 시진핑이 내가 아니라면 이 어지러운 정세를 누구도 헤쳐나갈 수 없다고 계속해서 내부적으로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진핑이 실제로 장기집권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1년 뒤 개최될 제 20차 당대회 전까지 부동산 문제, 전력 부족 사태, 공동부유론으로 인한 상류층의 불만 그리고 사회문화적 통제로 인한 인민들의 피로감 증대 등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국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오쩌둥 이후 공산당 총서기를 2번 이상 연임한 사례가 단 한번도 없는 상황 속에서 시진핑은 최초로 총서기 3연임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실현 여부는 그가 실제로 당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지 그리고 장악하고 있다면 그 권력을 내년 말까지 움켜지고 있을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향후 1년 간 중국 내부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따라 앞으로 중국 정치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판단됩니다.